영화 ‘인터뷰’ ‘주홍글씨’ ‘오감도’ 등을 감독한 변혁(46)씨는 쉬는 날엔 주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집 주변에서 시간을 보낸다. 프랑스 유학을 마친 후 8년째 강남에서 살고 있다. 강남에 사는 이유를 묻자 “강남구청역 근처 유럽 빵집 ‘레트로 오븐’에서 빵을 먹을 수 있고 이자카야 ‘하시’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는다.
이어 “영화사와 광고회사들이 강남에 몰려 있어 일하기 편리하다”고 했다.변 감독은 15~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시네마틱 퍼포먼스_자유부인 2012’(이하 자유부인 2012)의 각본·연출을 맡았다. 자유부인 2012는 영상과 현대무용·패션쇼 같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복합장르 공연’이다. 연극배우 박정자의 내레이션, 한혜진을 비롯한 전문모델 20명의 런웨이 워킹 등 볼거리가 다채롭다. ‘자유부인 2012’의 연출을 맡은 변혁 감독은 “이번 공연을 ‘시네마틱 퍼포먼스’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한 무대에서 영화와 현대무용· 패션쇼를 모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비석의 원작 소설을 무대에 올려
공연 준비에 바쁜 변 감독을 지난달 10일 만났다. ‘오감도’ 이후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없던 터라 새로운 작품 소식이 반가웠다. 먼저 영화가 아닌 복합장르 공연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변 감독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 보니 장편 영화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영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의 목표가 현실을 담아 내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영상이 흑백에서 컬러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발전해 왔듯 무용과 음악을 통해 스크린 속 사람들이 무대 위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배우들은 영상과 무대를 자유롭게 오간다.
‘자유부인 2012’는 정비석의 동명 소설 『자유부인』(1956년)의 스토리가 중심이다. 주인공 선영의 결혼생활과 자유를 찾는 과정, 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네 차례 영화로 제작돼 관객과 만난 작품이지만 ‘자유부인 2012’는 이전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첨단 영상과 현대무용이 어우러져 원작에서 느낄 수 없던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원작에서는 양장점 종업원이던 주인공 선영이 패션 에디터로 바뀐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변 감독은 “무대에서 웅장하고 화려한 쇼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패션쇼가 떠올랐고 선영의 직업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신 배우들의 어설픈 워킹 대신 전문 모델들의 멋진 워킹을 만날 수 있다. 의상은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씨가 맡았다.
2012년을 살고 있는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장치들도 눈에 띈다. 선영의 대화 내용은 명품·성형처럼 요즘 여성의 관심사가 주를 이룬다. 또한 일반 여성의 인터뷰를 다큐멘터리 형태로 넣었다. 변 감독은 이를 위해 일반 여성 200명과 인터뷰를 했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게 변 감독의 설명이다.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 소재로 영화 준비
변 감독은 ‘자유부인 2012’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뒤 가을부터 본격적인 장편영화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학교에 안식년을 신청했다. 현재 2개의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 중 한 편은 97년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영아 유기 사건을 다룬다. 이 사건은 서래마을에 살던 프랑스 여성이 자신이 낳은 아기 2명을 유기한 사건으로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를 충격에 빠트렸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여성은 프랑스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일반 회사에 다니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변 감독은 “처음 그를 ‘괴물’이라고 말하며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던 프랑스 현지 언론이 그를 치유의 대상으로 보기까지, 주변의 시선 변화 과정과 어떠한 경우에 죄를 용서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내년에 서래마을과 프랑스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글=송정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2013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