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2천년 전 예수와 열 두 제자가 마지막 저녁을 함께 하던 그 밤, “너희 중에 누군가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는 예수의 한 마디에 그를 따르던 열두 제자의 반응을 그린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그림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의 주제가 되기도 했지만, 다빈치의 그림에서 특히 예수의 얼굴은 끝내 다 그리지 못한 미완성 된 상태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제스처와 표정이 너무 생생하여 우리는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처럼 성서의 구절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실감나게 만들었고, 이것을 가능케 한 주인공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무용작품에서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의 말이 떨어진 후 벌어지는 열두 제자의 반응을 인간의 보편적 속성과 본질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의 반응은 우리 인간의 보편적 속성과 닮아있으며,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스승을 따르는 한 인간, 그리고 하나의 믿음과 신뢰가 사소한 이견에 의해 순식간에 갈라지는 배신과 싸움이 이어지는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안타까움이 작품에 그려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파고들면 그 실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다. 사람들은 조그만 것 하나에도 실망하고 분노한다. 믿음과 신뢰는 순식간에 배신과 싸움으로 바뀐다. <최후의 만찬>은 종교적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사회, 모든 인간관계 속에 있는 보편적인 안타까움을 다루고 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우리들의 뒷모습, 양면성에 주목하고 싶었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 존재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비로소 가능한 관계의 변화에 대해서 말이다. 명화를 통해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고 우리와 닮은 그들의 이야기, 그들과 닮은 우리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미완성된 명화에 상상력을 부여하여 어떤 모습으로 그들이 모였을까? 스승에게 순종과 복종을 맹세하지는 않았을까? 뜻밖에 던져진 스승의 한마디의 그들은 적대 관계가 되고 언쟁을 벌리지는 않았을까? 라는 지속되는 의문을 풀어가는 것이 본 작품의 창작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열 두 제자가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에 관한 인간관계의 변화에 집중하며,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움직임과 영상을 통해 살아있는 명화로서 재현하고자 했다.